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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10월의 독립운동가 - 채상덕(蔡相德)
2017-10-11 19:10:37, 조회 : 146

                              1862 ~ 1925
-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의 개척자 -

                    
채상덕은 1862년 황해도에서 출생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한국침략을 시작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05년 마침내 을사늑약을 강압해 외교권을 빼앗아 갔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애국지사들이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의진을 구성해 일어났다.
면암 최익현도 1906년 6월 4일 전라북도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 최익현의 문인이었던 채상덕은 스승의 명을 받고
1906년 1월 충남 예산의 곽한일과 정두화에게 가
의병에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동의한다는 의사가 담긴 답신을 받고 돌아왔다.

1913년 독립의군부는 서울, 강화, 수원, 개성, 광주에 5영을 설치하고,
각 도 및 군 이하까지 하부 조직망을 구축하는 편제를 만들었다.
이 편제에 의해 3월 총대표와 도대표가 선정되었는데,
채상덕은 13명의 총대표 중 한사람으로 선임되었다.
독립의군부는 일제의 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을 비롯한 침략수뇌부에
한국을 침략한 부당성을 깨우치는 서한과 함께 국권반환 요구서를 보내고
대규모 의병부대를 구성해 전쟁을 수행하고자 했다.
1913년 5월 국권반환요구서와 부당성을 일깨우는 서한을 보내는 1차 활동을
전국의 조직망에서 동시에 실천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의군부의 조직과 계획이 누설돼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독립의군부마저 와해되자 채상덕은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로 망명했다.
1920년 10월 경신참변이 발생한 이후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파괴된 독립군기지와 한인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1921년 후반부터 독립운동세력의 통합운동을 일으켰다.
1922년 봄 환인현에 모여 대한통군부를 결성했다.
통군부는 기존의 각 단체를 해체하고 하나로 합친 통합 독립운동단체였다.
통군부가 성립되면서 채상덕은 최고 책임자인 총장에 선임되었다.
비로소 남만주지역 독립운동계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1차적인 통합을 이룬 통군부는 남만통일회와 그 후원대를 조직해
더 폭넓은 통합운동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통군부에 참여하지 않은 단체의 대표들까지 참가시켜
1922년 8월 23일 환인현 마권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를 개최했다.
이들 단체의 대표들은 7일간에 걸친 회의 끝에 기존의 각 단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를 성립시키기로 합의했다.
채상덕은 통의부의 부총장에 선임되었다.
총장은 김동삼이 맡았다.
통의부는 항일무장활동에 주력했던 기존의 독립군단과는 달리 항일활동과 함께
경신참변으로 파괴되고 흩어진 이주한인사회를 복원해야 할 임무까지 주어졌다.
1923년 초 복벽주의 계열 인사들이 대한의군부를 조직했다.
의병출신인 채상덕은 총책임자인 총재에 추대되었다.
본부의 근거지는 통의부와 같은 관전현에 설치되었다.
1923년 여름, 남북만주 독립운동계지도자 58명이 남만주 화전현에 모여
만주독립운동계의 통일과 진로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1923년 8월 15일부터11월 3일까지 2개월 반이 넘는 기간 개최된 대장정의 회의였다.
채상덕 또한 참여했고, 모름지기 중국내 한국독립운동자들 대부분이 큰 관심을 보이며
개최된 대규모회의였다.
참가 대표들과 여건상 불참한 대표들까지를 망라해 ‘만몽신당’의 조직을 편제하고
책임자들을 선임했고 채상덕은 비서로 활동하였다.
순국의 군부를 성립시킨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
채상덕은 의기충천한 19살의 청년 이수흥을 만났다.
단신의 체구였지만 굳은 의지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독립군 인재로 키우고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제자로 삼았다.
1923년 7월 채상덕은 이수흥을 북만주 액목현에 있는
김좌진이 설립한 사관학교인 신명학교로 보냈다.
이수흥은 이듬해 2월까지 신명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채상덕이 있는 남만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 채상덕은 집안현에 본부를 둔 참의부에 가입시켰다.
1924년 상반기 통의부를 빠져나와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군단인 참의부를 성립시켰다.
참의부 성립 당시 의군부의 일부 독립군들도 가담하였다.
강력한 항일무장투쟁을 노선으로 한 참의부는
용감하고 민첩한 이수흥이 활동하기에는 최적의 독립군단이었다.
그런데 참의부는 출범한지 약 1년이 채 못 된 1925년 3월 16일 집안현 고마령에서
5개 중대의 간부를 비롯한 대원들이 모여 군사회의를 개최하고 있었다.
이 회의를 밀정 이죽파가 일제의 초산경찰대에 밀고하였다.
일본군이 기습해 오자 참의부 측도 대항해 공방전을 펼쳤지만,
참의장 최석순 등 29명이 전사하고, 많은 인원이 부상을 입고 피신해야했다.
이수흥도 이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으나 가까스로 빠져나와 이 사실을 스승인 채상덕에게 알렸다. 그많은 부하가 전사하고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채상덕은 비탄에 빠졌다.
채상덕은 “내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1995년 채상덕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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