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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9월의 독립운동가 - 고운기(高雲起)
2017-10-11 19:09:23, 조회 : 131

                            1907-1943
                        
- 중국 전역에서 항일 무장투쟁 전개한 진정한 군인 -

공진원은 ‘고운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정정화의 회고록인 『장강일기』에는 그의 본명을 ‘고운기’라 하고 있고,
여러 저술들에서도 고운기를 본명이라고 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러 기록에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공창준(1880 – 1936. 4. 15)으로 되어 있으니,
본명은 공진원이 맞다고 할 것이다.

공진원은 1907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공창준은 을사늑약 직후 이에 분개하여 홍범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홍범도부대와 함께 만주로 이동하여
1930년대에는 북만주에서 홍진·이청천 등과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 때 선생은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이후 하얼빈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운동과 교육 사업에 종사하였다.

공진원은 1930년대 초반 한국독립군 제6중대장이었다.
한국독립당 창립 당시 공창준은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조직부 위원이었다.
아버지는 당의 간부로, 아들은 독립군의 간부로 활동한 것이다.
한국독립군은 결성 직후부터 중국의 반만항일군과 연합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1932년 1월 중국군과의 첫 연합작전인 서란현전투에서
일본군 1개 분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1932년 9월 길림자위군의 고봉림 부대와 연합하여 일본군과 만주군이 지키고 있던
쌍성보를 기습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두 달 후 제2차 쌍성보전투에서는 크게 패하였다.
1932년 11월 29일 공진원은 강진해·심만호와 함께 액목현에서 오의성·시세영 등의 부대에게 한국독립군과의 합작을 제의하였고 연합부대의 명칭은 ‘중한연합토군’이라고 하였다.

1933년 2월 경박호에서 한국독립군은 시세영 부대와 함께 일본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명한 경박호전투였다.  
1933년 6월에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던 동경성과 일본군이 왕청현으로 이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길목인 대전자령 계곡에 매복하였다가 이들을 급습하기도 하였다.
1933년 말 공진원은 한국독립군과 함께 중국관내로 이동하였다.
중국관내로 이동하게 된 데에는 북만주에서 더이상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주된 요인이었지만, 김구로부터 중국관내로 이동하라는 제의도 크게 작용하였다.
공진원은 낙양에 도착하여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였다.
공진원은 1934년 2월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여 1년 2개월 동안 군사교육과 훈련을 받고
1935년 4월 졸업하였다.
공진원은 낙양군관학교를 졸업한후, 이청천과 함께 활동하였다.
공진원이 남경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아버지 공창준이 별세하였다.
공창준은 1933년 말 한국독립당이 중국관내로 이동할 때, 북경을 거쳐 남경에 와 있었다.
그러나 남경에 도착한 후 병을 얻어 1936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면서 공창준은 공진원에게 ‘너는 국가·민족을 위하여 진충하여라’ 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공진원이 조선혁명당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독립운동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대일항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그리고 1937년 8월 17일 연합체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다.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가 결성되면서, 공진원은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남경을 공격해오면서 임시정부는 피난길에 올랐다.
유주에 도착한 후, 공진원은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이하 ‘청년공작대’로 약칭) 대장을 맡았다.
청년공작대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소속되어있던 청년들을 중심으로
1939년 2월에 결성한 군사조직이었다.
청년공작대는 유주에서 주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유주에 머물던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은 1939년 5월 기강에 도착하였다.
공진원은 기강에서 임시의정원 의원과 이어 한국독립당의 중앙감찰위원과
한국광복군에서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중경의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식을거행하였다.
성립전례식 마지막 순서에 공진원이 참모의 자격으로 전방에서 활동하는 장사들에게 보내는
‘告中國前方將士書’를 낭독했다.
광복군이 창설된 후, 공진원은 제2지대장에 임명되었다.
제1지대장은 이준식, 제2지대장은 공진원, 제3지대장은김학규였다.
공진원은 제2지대장에 임명된 직후, 1940년 11월 대원들과 함께
섬서성 서안에서 제2지대장으로, 그리고 서안총사령부에서는 참모로 역할하였다.
공진원은 징모 제2분처의 주임으로 병력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중경으로 돌아온 후 공진원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10월에 개최된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9개준승’의 취소를 제안하기 위한
특종위원회라는 기구를 발족하였다.
공진원은 김상덕·손두환·조경한·유자명 등과 함께 위원으로 선임되어
‘9개준승’을 취소시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공진원은 ‘9개준승’이 취소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병마로 1943년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정부에서는 1963년 공진원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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