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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8월의 독립운동가 - 김수민[金秀敏 ]
2017-08-21 18:42:18, 조회 : 144

                                             1867-1909
                        
경기도 고양(高陽) 출신이다.
그는 농촌 출신으로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였기 때문에
관헌으로부터 동학당(東學 )으로도 지목을 받아 왔다.
그는 힘이 남달리 세고 사격술이 뛰어나서 백발백중(百發百中)하는 기술이 있었으며
화약과 탄환까지 스스로 제조할 줄 알아 그의 휘하에는 많은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봉건적 수탈에 항거하던 그가 일제의 농민 수탈이 심화되어 가고,
이어서 1907년 군대해산이 감행되자 일련의 농민운동을 조직화시켜
항일운동으로 전환하여 발전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1907년 8월 25일에 그가 살고 있던 장단군 북면 솔랑리(北面 率浪里)에서
의병 모집을 착수하였다.
그는 군부(軍部) 소관의 대포를 빼앗아 무장하고,
덕음동(德蔭洞)을 거점으로 군량을 적취(積聚)하고,
보부상(褓負商)을 모집하여 정보대를 편성시켜 원근의 적정(敵情)을 탐색하도록 할뿐 아니라
산악전투에서 의병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의병복장을 염색하여 입게 하였다.
그리고 민폐를 덜기 위하여 부호의 양곡과 의복을 징발하여 군용에 충당시켰다.

이렇게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 구성된 농민의병은
일찌기 을미의병 때 신돌석(申乭石)·김운로(金雲老)의 의진에서 비롯되었지만,
김수민(金秀民)·안규홍(安圭洪)의 정미의병에 이르러서 본격화가 가능하였다.

1907년 9월 김수민은 부하 병력이 300명에 이르자 총기를 휴대케 하고 스스로 대장이 되어
9월 중에 경기도 개성군 대흥산(大興山) 창고 내에 모아 둔
관군의 대포 30문과 소포 150문을 탈취하여 병력을 강화시켰다.
10월 11일 밤 경기도 장단군 북면에서 일병과 한 차례 교전을 하였으며
11월 27일 개성(開城) 수비대와 격전을 벌였고 열은동(悅隱洞) 일대에서 농민들을 재규합하였다.

12월에 부하 100명을 이끌고 이인영(李麟榮) 부대와 합병하고
이인영·이은찬(李殷瓚) 등과 같이 경기도 내의 장단·마전(麻田) 등 각지에서 세력을 떨쳤으며
황주·해주·서흥 등지의 일군 수비대와 여러 차례의 교전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수민은 전체 의진을 20명에서 30명 정도의 인원으로 유격대를 편성한 후,
1908년 4월 16일에는 구화장(九化場) 헌병 분견소를 기습 공격하여
일군 헌병을 살해하고 완전 점령하였으며, 이곳에서 다량의 병기와 탄약을 탈취하였다.
그 후 장단·풍덕(豊德) 일대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 때의 사실을 일제는 그들의 작전보고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김수민 의진의 토벌을 위해 장단 구화장 양합리(兩合里)·개성·풍덕의 각 수비대와 헌병 등이
협력하여 실시하고 때로는 소집단을 궤란시켜 약간의 손해를 입혔으나,
아직 그 뿌리는 뽑지 못했다."
이상에서 볼 때 김수민의 의진이 게릴라전에 얼마나 능숙했던가를 알 수 있다.

그 후에 있었던 김수민의 강화도 상륙전에서 그러한 면모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강화도 전투의 전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김수민 의진은 본래의 근거지에서 점차 남하하여 1908년 10월 상순에 강화도를 기습 공략하여 그곳 재류 일인을 완전 처단한 후 강화도를 회복하였다.
이에 놀란 일제는 용산의 일군 보병 제13연대 1소대 30명을 강화도로 급파하여
10월 30일 강화에 상륙시켰다.
이때 정족산(鼎足山) 전둥사(傳燈寺)에 웅거하고 있던 약 100명의 의병들은
접근해 오는 일군과 1주야에 걸쳐 격전을 벌여 이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일제는 31일에 다시 35명을 증파하였다.
합진한 일군이 11월 1일 광성(廣城)으로 재상륙하여 전등사로 돌격하였으나
그 어느 곳에서도 김수민의 의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놀란 일군은 별립산(別立山) 산이포(山伊浦) 등지를 수색하였지만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일군은 김수민 의진의 민활한 작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후에 김수민과 그의 의진에 대하여 일제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내리고 있다.
"김수민의 의진은 군술(軍術)에 능하여 이산·집합이 또한 교묘하고
궁지에 몰린 때도 한 두 차례가 아니었으나 능히 빠져나가
지금도 부하를 곳곳에 흩어져 있게 하고,
자기는 적은 부대의 장수로서 출몰 배회하므로 그 체포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일제는 그것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 기회에 강화도 의병들을 소탕시킬 목적으로 대수색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개성 수비대의 30명, 용산 주차 일군 보병 부대의 장졸 70명,
해주(海州) 수비대의 장졸 34명, 연안(延安) 수비대의 장졸 7명 등을 동원하여
이들을 8대(隊)로 나누어 3일 동안 의병 소탕전을 전개하였다.
수색전은 11월 2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첫날 약 20명의 김수민 의진의 유격대원들은
정두동(亭頭洞)에 매복해 있다가 지척 지간까지 접근하여 적군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여
7명 중 4명을 쓰러뜨리고 서북방으로 후퇴하였다.
이 때 의병들은 이미 대부분 배에 승선하여 황해도와 주변 섬으로 이동한 지 오래되었다.
1909년 2월 김수민은 적성(積城)에서 그리고 3월에 강원도·충청도·황해도 일대에서
연기우(延基羽)·하상태(河相兌)·이진룡(李鎭龍)·한정만(韓貞萬)·이인순(李仁淳)·정용대(鄭用大) 등과
더불어 활약하였다.
그 후 적정(敵情)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보다 완강한 항일전(抗日戰)을 전개할 목적으로
의진을 동생 김백수(金白洙)에게 잠시 맡기고, 자신은 차부(車夫)를 가장하여 서울로 잠입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8월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옥을 파하고 탈옥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9년 11월 22일 판사 남상장(楠常藏), 검사 김낙헌(金洛憲)에 의하여
마침내 사형 언도를 받고 순국하였다.
그의 휘하에는 많은 평민들이 운집하여 그의 의병 활동을 도왔는데,
그 중에 농업을 하던 이인식(李仁植)과 김거복(金巨福), 이창근(李昌根)이 5년 징역,
그리고 소금 장사하던 최기서(崔起西)가 징역 7년,
농업 겸 유생인 전복규(全福奎)가 유형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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