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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안희제
관리자  2013-08-08 17:30:38, 조회 : 1,651, 추천 : 208

1. 백대사표(百代師表)로  재평가를  받다


  광복 이후 부산 시민들은 백산 안희재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이는 암울한 식민지 시기 백산상회를 근간으로 항일운동을 주도한

‘백산정신’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심산 김창숙(金昌淑)은

백산의 ‘인물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선생의 일생은 우리 반제(反帝) 민족선구자로서의 모습으로 거룩하고 당당함이었다.

마음에 사기(私氣)가 있었던가.

어디까지든 정대(正大)했으며 사람을 용납함에 협량(狹量)했던가.

어디까지든 관대 활달했으며, 일을 꾀함에 견해가 짧았던가, 어디까지든 정확 원대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적의 고문과 그 찔기찔기한 각양의 박해 밑에서도

꺼지지 않고 매진하는 용감성 등 엄연하여라.

어찌 우리 겨레의 백대사표의 기상이 아니겠는가.”


   혁명가의 경험과 진정성에서 나오는 ‘인간 안희제’를 이처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동지인 ‘경주 최부자’ 최준(崔俊) 회고에서도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2. 교류와 소통으로 민족해방운동에 전념하다


   불법적인 을사늑약은 백산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였다.

변화에 부응하는 방안은 신문학을 통한 실력배양임을 절감하는 동시에 사립흥화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와 이어 양정의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 맺은 인간관계는 향후 자신의 원대한 이상을  펼치는 밑거름이었다.


   ‘교류와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한 백산은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재학 중 교남학우회 등을 비롯한 계몽단체 참여는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고향에 세운 의신학교 . 창남학교와 부산 구명학교 교장으로서 활동도

대동단결의 밑거름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서상일 . 김동삼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대동청년단도 조직하는 등

일제 침략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단원은 반드시 피로써 맹세한다” 라는 단규(團規)처럼

국권회복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데 앞장섰다.




3. 독립운동기지로서 백산상회를 운영하다


   국망(國亡) 이후 망명한 백산은 북간도 등지를 거쳐 러시아 불라디보스토크에 정착했다.

신채호. 이동휘. 이갑 등을 만나 다양한 항일운동 방략을 모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항일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였다.

이를 위한 국내외 항일세력과의 긴밀한 연대와 활동을 위한

독립운동자금 확보는 우선적인 당면과제로서 다가왔다.


    귀국하여 부산지역 자본가인 이유식(李有植) . 추한식(秋翰植)등과의

백산상회 설립은 이러한 목적을 관철하기 위함이었다.

국외에서 전개되는 항일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국내 연락망이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독립운동기지는 바로 백산상회였다.

백산상회는 무역주식회사로 회사명 변경과 동시에 각지에 지점이나 연락소를 개설하였다.


   3.1운동 결과로 조직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항일운동 구심체로서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연통제 . 교통국. 지방선전부 등을 통하여 국내 항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였다.

백산무역회사 지점은 사실상 국내로 파견된 특파원 활동지원과 아울러

독립운동자금 공급처나 마찬가지였다.

곧 연통제 국내 지부인 셈이었다.

단둥(安東)에서 이륭양행을 운영하던 조지엘 쇼와 만남을 통하여

이러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4. 인재 양성이 독립국가 건설의 초석이다


   백산은 우수한 청소년을 선발하여 국내외에 유학시킬 목적으로

기미육영회를 조직하였다.

해외로 유학시킨 대표적인 인물은 전진한. 김범무. 안호상. 이극로. 신성모 등이었다.

민중 계몽과 경제적인 향상을 위한 부산예월회와 협동조합운동도 전개하는 한편

[중외일보] 사장으로 항일언론의 필봉을 휘둘렀다.


   만주사변 이후 국내에서 항일운동이 어렵게 되자

영안현 동경성에 독립운동기지로서 발해농장 경영에 착수했다.

이곳으로 대종교 총본사를 이전하는등 대종교를 통한 대동단결을 도모하였다.

이주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동시에 독립정신의 지주로서 대종교 신봉에 열성을 다하다가

결국 임오교변으로 이역만리에서 순국하게 되었다.



                                                                                       _  8월 독립기념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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