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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빼앗긴 잊지 못할 사건
관리자  2012-08-11 17:28:25, 조회 : 1,960, 추천 : 404

*  명성황후  시해와  을 사 늑 약  



   동학농민운동이  있었던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자  

명성황후는  친러정책을  시행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개혁의지를  불태웠지만  1905년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을사늑약  등  일제의  탄압은  가속화되었다.  

1910년  8윌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우리는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일제강점기  고난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일제의  만행,  명성황후 시해(弑 害)-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국과  시모노세키 (下 關)조약을  체결하고  

타이완과  랴오뚱  반도를  나누어  받는다.

그러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개국의  간섭으로  일본은  

랴오동  반도를  다시  청국에 반환하게  된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친러정책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은  

1895년  10월  8일  새벽  군인 출신  미우라 (三 浦) 공사의  주도하에  

총칼로  무장한  일본  낭인 (浪人)  20여  명이  명성황후의  침실에  난입한다.

그리고는  명성황후와  3명의  궁녀를  살해하고  

황후의  시신을  끌어내  석유를  붓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을  을미사변이라고  한다.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삼국간섭  이후  일제는  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하고자  

러시아와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영국과  '영일동맹'  을  맺은  일본은  미국의  협력을  얻어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막고  

'동양평화'  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계획한다.  

1904년  2월,  일제는  여순항과  인천  앞바다에  각각  정박해  있는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해  침몰시키면서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일제는  우리  영토  내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일본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한일의정서' 를  강제적으로  체결했다.

러일전쟁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점차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었고,  

결국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서  궁성을  포위한  가운데  

광무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한다

그리고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광무황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무효를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나라는  1910년  8월  22일,  

통감  데라우치마사타케 (寺內 )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사이에

강제  병탄조약이  체결되어  국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를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큰  수치라  하여  '경술국치'  라고  한다.      

                                                                   - 월간 독립기념관 8월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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