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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지를 세상에 알린 민족운동 - 6 .10 만세운동
관리자  2012-06-08 02:46:45, 조회 : 2,382, 추천 : 393

* 점점  더  교묘해진  일본의  식민지  정책

       전  세계에  우리민족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알렸던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  3 .1 운동이다.
3 .1운동은  우리민족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다른  나라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형을  미쳤다.  
하지만  일본의  통치는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바뀌었다.  
겉으로는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우리민족을  더  분열시키고  억압하기  시작하였다.
"문화정치" 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해  친일파를  내세우고,  
수많은  친일단체를  만들어  일본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또  조선의  경제권을  완전히  빼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산미증식계획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의  공업  원료와  식량을  일본으로  빼돌렸고,
조선인에게만  무거운  세금을 물려서 우리민족의 재산을  세금으로  모두  빼앗아  갔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왕실을  무력화하기  위해  
일본  귀족과  강제로  결혼을 시켜  감시하고  간섭했다.
우리민족의  전통을  무시하고  정신을 철저히  훼손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1920년대 우리민족은  일본의  더  악랄해진 "문화정치"  아래서  
점점  민족의  전통질서가  무너지고, 경제적 수탈로  중산층과  농민들이  몰락하면서  
점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1926년  4월 25일( 음력 3월 14일 ) 오전  6시  15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피맻힌  한을  토하는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두었다.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지  20년,
일본에게 국권을 빼았긴 지 17년이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강제로  고종황제를  왕위에서  물러나게하고
고종에 이어 조선의  27대  마지막  황제에  오른  분이  순종이다.
안타깝게도  그  때는  이미  일본이  한미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해  
국정을  간섭하면서  조선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때였다.  
일본은  정부의  중요한  자리에  일본인을  임명하면서  
우리  정치를  마음대로  구사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1908년  조선의  모든  경제권을  빼앗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어서  1909년에는  조선의  법부와  군부를  각각  폐지해  
사법권과  군사력까지  모두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조선에  남은  것은  국권  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들판에서  깜박거리는  등불 같았던  조선은,
1910년  8월 29일  이완용 . 송병준 . 이용구 등  
친일매국노가  앞장선  한일병합조약이  맺어지며  불이  꺼지고  말았다.

     이렇게  대한제국의  멸망 후  
순종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황제 자리에서  밀려나고  
신분이 일본 천황의  아래인  신하처럼  격하 된 채  창덕궁에 갇혀  
한 많은 세월을 보내다 1926년  4월 25일 승하하셨다.

     일본이 커피를 즐기던  고종과 황태자  순종의 커피에  독을  넣었다는 독살설이
국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우리민족은  커다란  울분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짓밟으려  했지만  
순종은  조선 민족에게  여전히  황제였고  정신적인  지주 였기  때문이다.



* 다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

      순종이  승하한지  닷새후인  6월10일,
장례식을  마친  융희황제 순종의 인산행렬이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  단성사 앞을 지날때  
수많은  군중 속에서 수천장의  격문이  날아오르며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이 주도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6 .10 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러자  모든 민중이  호응하면서 만세소리는 상여행렬을 따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후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 순창.군산.정주.홍성.공주로이어졌다

     6 .10만세운동은  3 .1운동을  잇는  전  민족적인  항일운동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중앙고보, 중동학교의  대표자  박용규 . 곽대형 등이  주도해  
사립고보생  2만4천명을 동원했고  
연희전문의  이병립. 경성제국대학의  이천진.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박하균 . 박두종 등이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해  배포했다.

     그러나  일제는  철저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조선총독부 산하 경찰과 일본군 5천여명을 투입,
부산과 인천에는 함대를 정박시키기까지 했다.  
권오설등이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전단지 10만매를 인쇄 준비하다가
일경에 발각, 체포되고  전국적으로  1천여명이  체포, 투옥 되어  
3. 1운동만큼  전국적으로  확산 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민족에게  독립  의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의미있는  민족운동이었다.

                                                                  
                                                                     월간 독립기념관  6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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