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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시련-강화도조약
관리자  2012-05-09 19:11:32, 조회 : 2,069, 추천 : 413

  한민족의  강한  의지와  시련의  기록
   -강화도조약 (1876.  2. 26), 조선이  일본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수호조약이자  불평등조약
 

1. 새로움의  시대  개항기
 
   조선  전기  임진왜란과  같은  외침은  조선  후기에도  이어졌다. 
조선에  앞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1875년  9월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이를  구실삼아  그이듬해인  1876년  2월  무력을  앞세워 
조선으로 하여금  조일수호조규 (朝日修好條規),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한다. 
조선은  1876년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의  체결을  시작으로  문호를  개방했다.
이는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  군사적  침투를  야기하는  서막이었다.

   이후  조선은  '종주권' 을  앞세우는  청국과  '보호국화' 를  노리는  일본의  각축장이  되었고 
아관파천 이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러시아등  열강들의  침탈이  본격화되었다.
 
   강화도조약은  전체  12개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제1조에서  '조선은  자유국이다'  라고  규정한  것은 
청과의  종속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포석일  뿐이었다. 
이  조약으로  부산에  이어  원산 . 인천이  차례로 개항되고,
각  개항장에  일본  거류민의  거주지역이  설정되었다. 
개항장  내에서는  일본화폐가  유통되었고, 
수출입  상품에는  한  푼의  세금도  부과할  수  없었다. 
개항장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범죄를  저질렀을때
일본법으로  재판받을  수  있는  치외법권도  누렸다. 
일본은  국제법에  어두운  조선에  자국이  서양  여러나라로부터  강요당한 
불평등한  조약을  그대로  강요했던  것이다.


2. 열강의  침투,  운요호  사건
 
   1875년  일본은  조선정벌의  야욕으로  일본  군함을  앞세워   무력시위를  벌이면 
조선과의  교섭에  유리한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른  열강  세력들에  앞서  조선을  굴복시키고자 
중무장한  일본군함 운요호를  부산으로  출동시켰다.   
  
  이에  조선이  항의하자  자기네  사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시위포격까지  서슴치  않았다. 
운요호는  동해안  연변을  북상 . 함경도  영흥만에  이르고 
다시  영일만  연해를  거쳐  부산에  기항하였다가  일본으로  귀향한 후, 
조선  서해안  해로를  측량하는  체하며  다시  북상하여
앞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  당시  미국함대  등 
어떤  외국함선도  접근할  수  없었던 한강하류  강화근해의  요새지로  접근하였다.

   일제는  강화도에  닻을  내리고 
수십  명의  해병이  식수인  담수 (淡水)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강화부 초지진 ( 草 芝 鎭 ) 포대까지  접근하였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겪은  조선측  포대의  수비병들의  수 차례 경고를  무시하며, 
조선측의  발포를  유도하는데  성공한  일본군은  초지진에  맹렬한  포격을  가한  후 
우회하여  제물포의  연안인  영종진 (永宗鎭)에  맹포격을  가하였다. 
결국, 조선수비병들은  근대식  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대포와  화승총  등을  약탈하고  영종진에  대한  방화. 살육.약탈을  감행하였다.
   
   일본군의  엄연한  침략  행위였음에도  책임을  조선측에  씌워 
전권대사를  파견하고  조선에  항의하였고, 일본내의  반한감정을  고취시키면서 
대규모의  군대를  부산에  상륙시켜  무력적  위협을  하면서  조선에 수교회담을  요구하였다. 

   이로써  체결된  것이  강화도조약이다.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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