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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를 창설한 개화 . 개혁의 선구자 서재필
관리자  2012-03-08 18:36:52, 조회 : 2,150, 추천 : 412

- 계몽활동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다


    서재필은  1864년  1월7일  전남  보성  외가에서  태어났다.  

7세에  재당숙  서광하의  양자로  입양되어  외삼촌이  사는  서울  북촌으로  보내져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다.  

부모님  곁을  떠난  생활은  독립심을  배양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  김옥균과  교류하면서  갑신정변에  가담하기에  이르렀다.

정변  실패후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운데  미국에서  당당한  의사  자격을  얻었다.


    국내는  청일전쟁 . 명성황후시해사건 . 아관파천  등으로  

사회적인  불안감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는 고국의  개혁을  위하여  귀국하였다.  

동지들을  규합하여  독립협회를  조직한 후  다양한  계몽활동에  나섰다.  

한민족  자존심을  일깨우려는  독립문 . 독립관 건립, 민중계몽을 위한  [독립신문] 발간과  

협성회  조직  등은  대표적인  경우였다.

토론회나  강연회  개최는  사회적인  공론을  수렴하는  생활현장으로  정착되었다.

교류와  소통  확대에  당황한  지배층은  그를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독립협회  해산은  겨우  움트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싹을  깡그리  망가뜨리고  말았다.



- 국제적인  안목에서  조국광복에  매진하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의사와  사업가로서  변신을  거듭하였다.  

이승만 . 윤병구  등을  만나  대동단결에  의한  독립운동도  모색하는  등  

다양한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데  노력했다.  

[코리아리뷰] 발간이나 [대도] 투고  등은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3 .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더불어  국외  독립운동도  

국제정세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맞았다.  

4월  16일부터  3일간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개최된  대한자유대회는 시발점이었다

그는  한국통신부 . 한국친우회를  조직하는 등  조국광복에  우호적인  외국인  규합에  앞장섰다.

나아가  워싱톤군축회의나  범태평양회의  개최에  즈음하여  

국제적인  후원을  얻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

언론이나  잡지등에도  국내외상황을  널리  선전하는 등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진력을 기울였다.



-두  조국에  충실한  선각자였다



    한국  태생인  서재필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과  한국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한  불타는  정열을  품어왔고  그  갈망을  행동으로  옮겼다.

불행이도  그의  작은  고국은  열강의  세력이  교차하던  곳 이었다.

침략군에  대한  그의  투쟁은  끝이  없었고  더욱이  승리는  불가능하였다.  

미국  시민이  된  이후에도  한국독립운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시민권을  지닌  이중국적이라는  문제로  서재필에  대한  평가도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120여 년 전  정치적인  망명과  3번이나  고국을  등져야만  했던  그가  아닌가.  

비록  그는  미국시민이었으나 한국독립과  민주주의  초석을  다지는  '작은  밀알' 을  뿌렸다.  

더욱이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조국을  사랑한  생애로  일관되었다.  

혼탁한  오늘날  그의  충실한  삶이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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