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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투쟁을 도운 예술가 < 나 혜 석 >
관리자  2012-01-07 15:02:21, 조회 : 2,349, 추천 : 456

1. 여성해방을  주장한  선각자  나혜석.

        나혜석은  여성운동가,  예술가,  작가로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임이  틀림없다.

시대를  초월한  인식이나  생활방식은  ' 캐리어우먼 ' 이라는  찬사도 잠깐, 지탄의  대상으로

' 낙인'  찍히고  말았다.  남존여비라는  강고한  인습이  잔존한  시대상황은  결국  그녀를  

나락의  궁지로  내몰았다. 사회적인  냉대와  편견에도  끝까지  현혹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신에  따라  자신이  꿈꾼  세상을  향해  내달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행려병자로서  비극적인  죽음은  극적인  효과를  더한다.



2.  3 . 1운동에서  여성지도자로  부각되다.

        의열단원들의  국경지대  통과와  무기운반등에  대한  지원은  아직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다.  3 .1 운동  참여와  지도는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상을   부각

시키는  계기였다. 미주지역에서  발각된  [신한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군내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바라본  그녀의  활동상은  인상적이다.

3 .1 운동사에서  역할  또한  결코  과소평가 될  부분이  아니다.  개성과  평양을  직접  방문한

활동반경은  '실천적인'  나혜석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학생들을  이끌고  직접  만세시위에도

참가하였다. 특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투쟁은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제2의

독립운동이었다.



3.  물심양면으로  의열투쟁을  지원하다.

        나혜석은  외교관  부인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의열단 (義 烈 團)에  대한  지원과  후원에

나섰다. 1921년  9월  남편  김우영 (김 雨 英)은  중국  안둥현  단둥시  부영사로  부임하였다.

외교관  특권을  이용하여  남편은  항일운동가에  대한  지원을  마다치  않았다. 삼엄한  경계 속에

국경지대  통과를  안내한  사람은  나혜석이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대안의  접경지대는  

소리없는  총성이  울리는  독립전쟁이  진행되는  현장이었다.

특히  일제는  의열단원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경계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나혜석은  전혀 동요됨이  없이  이를  '시대적인 소명'  으로  받아들였다.  

의열투쟁  소식은  청소년에게  잠자던  항일의지를  꿈틑거리게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훼손되던  민족정기가  되살아나는등 독립에  대한  '희망의끈'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열단원  회고는  지원과  후원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황옥사건(黃 玉 事 件)은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이다.

나혜석  부부는  의열단원은  물론  당시  국외항일운동세력  지원에  앞장섰다.  

생사를  건  '모험적인'활동은  의열단원에게  용기와  아울러  

활동영역확대를  도모하는  밑거름이었다.

1920년대  국내의  항일운동세력과  연계된  의열활동은  이러한  후원으로  가능하였다.  

운명공동체로서  인식은  이와같은  ' 엄청난'  일을  견인하는  에너지원이었다.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은 수많은  숨은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4.  예술활동과  항일운동은  양립할 수  없었나

        이후  단체와  연계된  화동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그녀가  처한  생활환경과  시대상황  등과  무관하지  않았다.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전문적인  화가와  작가로서  활동은  

항일운동  동참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식민지배에  대한  현실인식은   삶의  고단함과  더불어  점차  약화되고  말았다.  

하지만  민족운동전선에서   탈락하거나   일제에  영합하지는  않았다.  

이전처럼  적극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예술가와  의열투쟁가의  만남은  숙명적인  한국독립운동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ㅡ 독립기념관  1월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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