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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민족교육의 산실 박달학원
관리자  2011-12-08 18:00:10, 조회 : 3,032, 추천 : 507

[ 해외  독립운동근거지로서  부각된  상하이]

   1910년  8월  경술국치는  국권회복운동을  도모하던  민족지도자들에게  
치욕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다.

외교관과  일부  재야지식인은  자정 . 순국하는  등  
의열투쟁으로  폭압적인  일제  침략의  실상을 알렸다.

대한제국기  최대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新民會)에서  활동한  지도자들은  
독립운동근거지를  국외에 개척하고자  망명길에  올랐다.

   이듬해  중국에서  전개된  신해혁명(辛 亥 革 命)은  
국권회복을  도모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제였다.

공화정치를  표방한  중화민국정부는  혁명을  도모하는  한국인  청년들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상하이는 조국광복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독립운동근거지로서  부각되었다.  

이곳에  집결한  혁명가들은  한중  양국의  국제적인  연대를  도모하는  등  
혁명운동의  지평을  넓여  나갔다.  

상하이는  국제적인  도시로서  명성뿐만  아니라  혁명운동의  중심지로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 조직적인  조국광복을  위해  동제사를  결성하다]

  신해혁명  진전을  목격하면서  선각자들은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위한  단체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했다.  

신규식(申奎植) . 박은식(朴殷植) . 조소앙(趙素昻) . 문일평(文一平), 홍명희(洪 命 熹) 등은
1912년  5월  20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했다.

본부는  상하이에  두고, 지사는  베이징 . 텐진 . 만주등 중국지역과  
노령 . 구미 . 일본등지에  지사를  설치  하였다.  

본부에는  이사장과  총재를  두고, 지사에는 지사장과  간사를  각각  두었다.  

최전성기에  회원이  300여  명에  달할  청도로  
국외항일운동의  중심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회원은  비밀을  엄수하는  동시에  
간부  상호간에도  암호를  사용할  만큼 철저한  바밀결사체였다.

동제사  결성이후  주요  활동기는  
1915년  신한혁명당  결성.
1917년  [대동단결 선언].
이듬해  신한청년단  결성 .
3 .1 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였다.



[ 독립운동  지도자  양성의  산실  박달학원을  설립하다]


   동제사의 중심세력은  해외유학을  희망하여  상하이로  모인  학생들  증가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들은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13년  12월17일 피랑스 조계  내  명덕리에  세운  박달학원은  
이러한  취지를  관철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 항일투쟁의  정신적인  지주인  민족의식을  일깨우다]

   박달학원은  단순히  학문의 보습적인  기능만을  수행하지  않았다.  

사실상  총책임자인  신규식은  지신의 저서인  [한국혼]을  통하여  
철저한  역사의식을  강조하였다.  

민족주의사가인  박은식 . 신채호 . 문일평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유학생은  장차  항일운동을  이끄는  차세대  지도자로서  소중한  존재였다.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능력배양과  아울러
독립정신에 기초한 민족의식은 더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한국혼을 강조하는  역사교육은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운영한  
인성학교(仁 成 學 校)로  계승 . 발전하는  가운데  
민족주의교육의  중심적인  이념으로  정립되어  나갔다.

대한제국기  북간도  서전서숙(瑞甸書塾)의 이념을  계승한  
명동( 明 東 )학교나  대성(大成 )학교  등이  일제강점기  민족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인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건국강령] 에서  삼균주의 (三均主義)에  입각한 교육정책도  
이와  같은  경험이 빚어낸  산물이었다.

박달학원이  근대교육사나  민족운동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서비롯되었다.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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