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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설당 - 나눔으로 행복한 삶을 정리하다
관리자  2014-01-12 21:31:30, 조회 : 1,387, 추천 : 144

-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날을 맞이하다


1935년 11월30일 새벽 벽두부터 경상북도 김천 읍내는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김천역이 생긴 이래 가장 분망한 하루였다.
특히 김천고등보통학교(이하 김천고보) 교직원과 학생들, 재단법인 송설학원 관계자 등은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하였다.

  이날 팔십 고령인 최송설당도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웠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서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김천고보 운동장에는 교직원, 학생, 축하객. 주민 등이 천 여명이나 운집하였다.
동아일보사장 송진우, 조선중앙일보사장 여운형, 조선일보사장 방응모, 변호사 이인,
오카자키 경상북도 도지사, 와타나베 학무국장 등도 모습을 보였다.



- 김천고보 설립으로 시세변화를 주도하다


  행사는 1부 신축교사 낙성식과 개교 기념식, 2부 설립자 동상 제막식 순서로 진행되었다.
정열모 교장의 개식사가 끝나자 설립자 약력 보고와 사업 보고에 이어 각계인사의 축사가 있었다.
먼저 등단한 여운형은 아주 적절한 언어를 구사하였다.

  “조선중앙일보를 운영하는 여운형이외다.
최송설당부인 동상 제막식에 초청받아 축사를 드리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경성을 떠나 남으로 내려오는 동안 쓸쓸하고 적막한 지방상태가 눈에 띄는 것이
마치 저 광활한 사막을 밟는 듯한 감상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김천에 들어와서 우리의 생명탑이라 할 만한 이 고등보통학교가
뚜렷이 서 있음을 발견함에 오아시스를 만남과 같아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큰 사막 가운데 이러한 오아시스가 일개 부인의 피땀으로 말미암아 건설된 것을 보니
동서고금 역사에서 그 유례가 극히 적은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되거나 미화된 표현이 아니었다.
경북지역 청소년에게 중등교육 수혜라는 ‘희망봉’은 바로 김천고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송진우. 방응모. 이인 등도 차례로 등단하여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사회자는 추운 날씨로 인하여 이인의 축사를 끝으로 “이만 축사를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갑자기 스님이 단상으로 올라와
“나는 금강산 유점사에 있는 중인데, 최송설당 여사에게 축사를 한 마디 드리기 위해
일천사백 리 길을 일부러 왔으니, 여러분 용서하시오”라며 양해를 구하였다.
일순간 행사장은 환희의 물결로 넘쳐났다.

  동상을 봉정 받은 최송설당은 마지막 남은 재산 3만원까지 흔쾌히 기부한다고 화답하였다.
장내에는 숙연함과 함께 주인공에 대한 경건함이 저절로 샘솟고 있었다.
하객들은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보냈다.

  1930년 2월 하순 서울 무교정에 사는 김천 출신 최송설당은
평생을 간직한 자식과 같은 재산 30만원을 아낌없이 기부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제 최송설당은 한국이 낳은 육영사업의 어머니이자 여장부로 각인되어
전국적인 대스타로 거듭나고 있었다.



- 불우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다


  최송설당은 1855년 8월 29일 김천군 군내면 문산리(현 김천시 문당동)에서
아버지 최창환과 어머니 정옥경 사이에 3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화순이고, 선대 고향은 평북 정주였다.
아버지의 염원인 가문의 신원을 해결하기 위해 1895~1896년경에 상경하였다.

  그럼에도 50대 중반까지 인생역정에 대해 여러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근검절약으로 모은 재산일 수도 있고
탐관오리인 남편 이용교의 유산일 수도,
아니면 엄귀비로부터 하사 받은 전별금일 수도 있다.
엄청난 재산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 나눔으로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도,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재산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쓰고자 결심했다.
그 때문에 자신을 길러준 고향 김천의 숙원사업인 김천고보 설립에 전 재산을 기부하였다.
김천고보 개교 이후 동상을 봉정 받은 지 4년이 지난 1939년
천수를 누리고 여든다섯을 일기로 작별을 고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비우고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되었다.

  최송설당의 인생역정은 그다지 존경 받을 만한 삶이라고 결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눔의 숭고한 의미를 일깨워준 마지막 승부는 정말로 아름답고 고귀하다.
참된 나눔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사분오열된 현실을 치유하는 지름길을
최송설당의 삶 속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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