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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률, 소통으로 연해주지역 한인사회의 대동단결을 도모하다
관리자  2015-06-02 22:29:25, 조회 : 1,014, 추천 : 96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러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조국의 땅에서 살지 못하는 슬픔과 나라를 빼앗긴 억울함을 풀기 위해
먼 타향에서 한인들을 이끌고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가 있다.
항일언론을 주도하며 제국 일본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  
유진률이다.



- 연해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다

  유진률(니콜라이 페트로비치 유가이)은 함북 경흥에서 태어났다.
1860년대 중반, 두만강을 건너 한인들의 연해주 집단이주가 시작되었다.
가혹하고 불법적인 수탈과 빈번한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목숨을 건 불법 월경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흥과 밀접한 국경지대인 아지미에 정착한 한인들은 러시아에 귀화하였다.
당시 귀화인들에게는 토지와 가옥 등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특히 러시아식 교육 수혜는 한인들의 사회진출을 도모하는 밑거름이었다.
유진률은 블라고베센스크에서 러시아정교 신학교를 졸업하여
출중한 러시아어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는 연해주 한인사회 선각자로서 활약할 수 있는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 대한제국 관료로서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유진률은 1899년 8월 내장원 종목과(種牧科) 주사, 궁내부 번역관보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에는 궁내부 번역관, 1903년 4월에는 주블라디보스토크 통상사무과 서기생으로서  한·러 양국의 원활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재직 중 민영환이 세운 사립 흥화학교에 장학금을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독립신문]에 부국강병과 문명사회 건설을 위한 의견도 개진하였다.
“한문에 굳은 선배들은 서양 글을 야만의 글이라 하여 읽지도 아니하고
썩은 나라 글만 읽어 옛적에 하던 일만 하니 무슨 지식이 생기겠는가.
오늘날 현실은 세계 강국들이 이익을 다투는 제국주의 시대이므로
옛일만 좋아하고 진보를 힘쓰지 않으면 청국에 이어 조선도 망할 수 밖에 없다”라며
냉철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대한제국 정부가 독립협회를 탄압하자 이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투고했다.



- [대동공보] 발행으로 한인사회 대동단결을 꾀하다

  러일전쟁은 예상과 달리 일방적인 일본 승리로 끝났다.
러시아는 일본과 외교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한인들 무장활동을 제한하였다.
식민지화에 대한 위기의식 고조는 연해주 일대로 한인들의 정치적인 망명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07년 계동·세동·신동학교 등 민족교육기관 설립과
이듬해 [해조신문] 발행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맞물려 있었다.
[해조신문]은 러시아 당국의 탄압으로 3개월 만에 폐간되었다.

  유진률은 차석보·문창범 등 35인과 함께 신문 재발간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더불어 연해주군 지사에게 신문발행을 청원하고 허락을 받아
대동공보사 설립과 동시에 주요 간부진으로도 임명되었다.
발행 당시 명의인은 러시아인 미하일로프였다.
발행인으로 러시아인을 내세운 이유는 러시아 당국과 마찰을 피하고
효과적으로 신문을 간행하기 위해서였다.
필요한 자금 대부분은 러시아 독립운동계의 대부인 최재형이 맡았다.



-국외 항일운동세력과 연계를 위한 중심지로 거듭나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는
대동공보사 사무실에서 계획되었다.
이에 가담한 인물은 유진률을 비롯한 정재관·이강·윤일병·정순만·우덕순 등이었다.
하얼빈 의거와 관련된 안 의사 동향·재판과정·심문과정 등에 대한
[대동공보]의 신속하고 상세한 보도는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유진률을 중심으로 안중근유족구제회 조직이나 추도회 개최 등은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진률은 일제강점이 현실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게재하였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기자인 임치정과 정보를 교류하여
국내 상황을 연해주 한인사회에 널리 알렸다.
1910년 9월 1일 [대동공보]가 폐간되자 다시 [대양보]를 간행하는 등
국내외 항일세력과 연대도 모색하였다.
일제의 악랄하고 기만적인 식민통치는 그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양보]는 연해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권업회의 기관지나 마찬가지였다.
[대동공보]의 후신인 [대양보]가 항일의식을 고취시킨다고 생각한 일본총영사관은
밀정을 통하여 활자를 훔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항일언론의 소멸은 점차 한인사회에서 항일운동 쇠퇴로 귀결되고 말았다.

  신문발행을 통한 언론활동은 한인사회를 각성시키는 동시에
상호 유대감을 조성하는 기폭제였다.
신문은 단순한 정보 제공 차원을 넘어 한인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인 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귀화한 한인들마저도 조국광복을 위해 혼신을 다한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외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보여준 이들의 조국사랑은 아름답고 영롱하다.

                                                월간 독립기념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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