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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잔 다르크,
관리자  2015-03-29 18:06:05, 조회 : 1,014, 추천 : 97

여성광복군 지복영

                     1920 ~ 2007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불리는 지복영 선생,
그녀의 아버지 지청천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과 성까지 바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였다.
지복영 선생 또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여성의 몸으로 광복군에 합류한 여성 독립 운동가이다.
여성의 몸으로 총을 들고 일본군과 맞서 싸운
지복영 선생의 삶을 되돌아본다.


- 중국에서 항일의식 고양을 위한 선전활동에 주력하다

지복영은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청년공작대)에 참여하면서
항일운동의 최전선에 나섰다.
이 단체는 1937년 8월 중국 남경에서 조선혁명당·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과
미주의 몇몇 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광복진선(한국광복진선) 후신이다.
한국광복진선은 창설된 이래 중일전쟁 발발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진강·남경·장사·광주·유주·기강을 거쳐
1940년 중경에 정착하였다.
지복영도 남경의 중국학교에서 수학하는 중 중일전쟁이 발생하자
임시정부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그녀는 ‘피난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면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임시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일항전을 못하자 청년들이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1938년 11월 광서성 유주에 도착하여 청년공작대를 조직하였다.
대원은 34명이었으며 이중 여성대원은 지복영을 포함해 11명이었다.

청년공작대는 주로 한국과 중국인들의 항일의식 고양을 위한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의 항일정신과 기개를 선전하고
한국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바꾸는 데 노력했다.
선전 활동은 거리 선전·연예와 항일 연극·대규모 공연·합창 등이었다.
미혼인 여성 대원들은 어른들의 고루한 생각 때문에 연극과 같은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으나 중국인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여성의 몸으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5일 중경에서 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17일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을 거행하였다.
총사령관은 지청천, 참모장은 이범석이었으며, 총사령부는 약 3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때 여성 대원으로 오광심·김정숙·지복영·조순옥·민영주·신순호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주로 사령부의 비서 사무 및 선전 사업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지복영이 여성 대원으로 활동한 계기는 다음과 같았다.
중경에 있을 때였다.
일본군 폭격기 공습에 방공호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을 피신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던 어느 날,
폭격으로 임시정부 청사 근처의 건물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로 인해 일주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후 “학사·박사가 되면 뭐하겠느냐.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나도록 하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광복군 참여를 결심하였다.


- 조국 독립운동 하는 데 남자 여자 가리겠느냐

지복영은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광복] 간행을 위하여 원고작성과 번역 등에 매진하였다. 1941년 2월 1일 자로 창간호가 간행되었다.
한국어본과 중국어본 두 종류였다.
한국어판 창간호 필자들은 김구 주석을 비롯하여
지청천·황학수·김학교·이복원·김광·지복영·오광심 등이었다.
창간호에는 여성 동지들의 약진을 격려하고 호소하는 글을 게재하였다.
지복영도 여성들 광복군 입대를 강조하는 글을 투고했다.
그녀는 봉건적 굴레에서 신음하던 여성들이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길은
남성들과 똑같이 민족전선에서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원고 이외에도 김구의 글과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전문’ 등을 번역하여 실었다.


- 너는 대한의 잔 다르크가 되어라

지복영 선생은 평소 아버지로부터 “너는 대한의 잔 다르크가 되어라”라고
들어왔던 터라 최전선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여성은 적 후방으로 가면 위험하다면서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난다며 말렸다.
이에 지복영은 밤새도록 편지를 써서 아버지에게 보냈다.
지청천은 “좋다. 잘 생각했다. 내가 남의 자식도 보내는데
내 자식이라고 금지해서 못 보내겠느냐. 잘 생각했다.” 라고 답장했다.
그녀는 곧바로 부양으로 떠났다.

산동을 향해 진군하던 광복군 제 3지대는
산동 정세가 급박해지자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휘성 부양에 제 3지대 본부를 설치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기까지 본부는 4년간 이곳에서 지하공작을 하였다.
낮에는 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우고 밤에는 광복군 초모작업에 힘을 쏟았다.

지복영은 부양에 온 지 1년 1개월 만에 병이 나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경으로 돌아갔다.
몸이 회복된 후인 1943년부터는 임시정부 외무부로 차출돼
중국방송을 이용해 한국인 학병들의 탈출을 권유하는 일을 맡았다.
1945년 광복군 총사령부 편대를 재편성했을 때 지복영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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