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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수, 김상옥 의거에 청춘과 인생을 바치다
관리자  2014-10-11 21:55:58, 조회 : 1,789, 추천 : 132

- 애국부인회 결성으로 항일전선에 뛰어들다

  1923년 1월 22일 새벽, 서울 효제동 한 모퉁이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일본경찰에
포위당한 채 마지막까지 쌍권총을 쏘며 저항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10여 일전 적의 심장부나 마찬가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세상을 놀라게 한 의열단원 김상옥이었다.
일본경찰의 물 샐 틈 없는 철통같은 감시망을 피해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은 효제동 73번지였다.
이곳은 남몰래 의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동지 이혜수(李惠受)의 집이었다.
김상옥을 숨겨준 이혜수는 누구이며,
그녀는 생사가 걸린 긴박한 순간에도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왜 김상옥의 피신을 도왔을까

  이혜수는 1891년 1월 3일 서울에서 부친 이태성과 모친 고소우리 사이에서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자녀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자녀 모두가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근대교육을 받았다.
한성고등여학교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혜수는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5월에 신의경 등과 함께 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자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임시정부 요인과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애국지사의 비밀연락을 담당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로써 항일전선에 온몸을 던질 수 있었던 요인도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 혁신단 단원으로서 항일투쟁의 뜻을 함께 하다

  이혜수가 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할 당시 김상옥은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189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상옥은
대장간과 영덕철물점 등을 운영하여 생계를 꾸려나갔으며,
동대문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청년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 윤익중·정설교, 불교학원 신화수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국에 대해 토론하며 항일투쟁의 뜻을 함께 하는 동지였다.
그들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비밀결사단체인 혁신단을 조직하는 등
자신의 웅대한 포부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운명과 같이 하려는 험난한 길을 선택하고 나섰다.

  역시 교회를 통해 김상옥을 알게 된 이혜수는 시국토론에 참여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혁신단 결성에 즈음하여 단원으로 동참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또한 [혁신공보]라는 지하신문 발간을 위한 재정적인 후원은 물론 배포에도 힘을 쏟았다.
여성이라는 신분을 활용한 지하신문 배포는 3·1운동 열기를 확산하는 기폭제였다.
나아가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있던 항일운동을 알려 민족정신을 북돋웠다.


- 독립운동과 암살단 조력에 온 힘을 다하다

  한편 1920년 1월 초 북로군정서에서 온 김동순은
만주 독립군의 국내진공작전에 호응하여
국내에서 식민통치기관 파괴와 총독·고관·친일파 암살을 요청하였다.
이에 김상옥·윤익중 등 혁신단 동지는 암살단을 결성했다.
암살단 결성을 논의한 장소는 이혜수의 집이었다.
이혜수는 이곳에서 신화수가 작성한 암살단 취지문을
동생들과 함께 비밀리에 등사판으로 수백 장을 제작하였다.
또한 암살단의 회의장소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암살단원의 식사와 옷가지 등을 준비하며 활동을 지원하였다.

  암살단은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한국 방문에 맞춰
의열투쟁을 전개하여 국제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계획이 노출되어 김동순 등이 체포되고
김상옥은 일경의 추적을 피해 몸을 숨겨야 했다.
이혜수는 김상옥의 피신을 지원하며 그를 대신하여 비밀연락을 맡았다.
동지인 장규동이 김상옥 망명 후
일제경찰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으로 사경을 헤멜 때도 병간호를 맡았다.

  이혜수 등의 도움으로 상하이로 망명한 김상옥은
독립운동자금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고자 두 차례나 귀국하였다.
이때 뒷바라지를 담당한 사람도 이혜수였다.
김상옥은 상하이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1월말 조선총독 암살과 종로경찰서 폭파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이혜수 집을 거점으로 흩어진 암살단 동지를 규합하고 거사준비에 나섰다.


- 종로경찰서 투탄의거 혐의로 모진 고문을 견디다

  1923년 1월 12일 밤 8시, 종로경찰서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폭발음이 일어났다.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투척되었다는 사실은 일제 당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의거 후 용산 삼판동에 있는 매부 고봉근의 집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김상옥은
1월 17일 새벽, 일경 15명의 습격을 받았다.
총격전 끝에 3명의 사상자를 내고
일경의 포위망을 탈출하여 피신한 김상옥의 마지막 은신처는 이혜수의 집이었다.
이혜수의 가족은 그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고 동지들과 연락을 주선하는 등
마지막‘서울 시가전’을 응원하였다.
이혜수와 동생 이창규는 김상옥의 부탁을 받아
그가 장충단공원의 돌다리 밑에 숨겨놓은 권총 두 자루를 대신 찾아왔다.
은신은 사흘 만에 끝이 났다.
김상옥의 거처를 탐지한 경기도 경찰부장의 총지휘아래 시내 4개 경찰서에서 차출한 무장경찰이 1월 22일 새벽 이혜수의 집 일대를 겹겹이 포위하였다.
마지막 격전장이 될 것을 예감한 김상옥은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일경과 접전을 벌였다.
3시간여의 치열한 전투 끝에 탄환이 떨어진 김상옥은 마지막 탄환으로 자결·순국하였다.

  일경과 교전중인 사이 이혜수와 가족 모두는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경은 종로경찰서 투탄의거의 전모를 밝히고자 잔혹한 취조와 고문을 계속하였다.
나머지 가족이 석방된 후 이혜수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보내졌다.
1923년 12월 25일 열린 공판에서 그녀는
일경의 고문으로 늑막염에 걸려 거동하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혜수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들에게 주요 회의장소를 제공함은 물론 독립운동 자금뿐만 아니라
숙소·의류 등을 공급하고 비밀연락을 전달하는 일도 맡았다.
이러한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의열투쟁 또한 전개될 수 있었다.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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