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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제일의 갑부 백선행 - 전 재산을 기부하는 선행을 실천하다
관리자  2014-08-13 12:59:44, 조회 : 1,426, 추천 : 169

- 불우한 환경을 기회로 삼다

백선행(白善行, 1848~1933)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여성 사회사업가이다.
평양에 살면서 많은 선행을 실천하며 감히 다른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삶을 살았다.
환갑이 넘어서야 평양인들 사이에서 이름 불린 백선행.
그는 전 재산 32만원으로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세운 최송설당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삶은 오늘 날 더욱 빛을 발한다.

1848년 경기도 수원에서 가난한 농부 백지용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당시 여성은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은 아기나 아지(兒只)로, 결혼할 무렵이면 애기씨로 불렸다.
아버지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평양으로 옮긴 후 그녀가 7살 되던 해에  사망했다.
홀어머니는 지극정성을 다해 그녀를 키웠으나 가난한 환경 때문에 아녀자로서 지켜야 할
범절을 겨우 익히는 것이 교육의 전부였다.
14세에는 조혼풍습에 따라 농부 안재욱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신혼의 부푼 단꿈도 오래가지 않았다.
병약한 남편을 극진히 간호했으나 결혼 후 2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집에서는 입 하나라도 줄이기 위하여
백선행에게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간청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날벼락이었으나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여자는 모진 운명조차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였다.


- 홀로서기에 전력을 기울이다

16세에 청상과부가 된 후로는 친정어머니와 단출하게 살았다.
슬픔이 밀물처럼 다가왔지만, 감정에 안주하고 있을 여유마저 없었다.
격동하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베 짜기, 길쌈, 삯바느질 등
부업과 등짐장사를 하며 생계비를 벌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얼마 되지 않는 재산도 친척들에게 속아서 모두 잃고 말았다.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백선행은 피눈물 나는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온갖 세파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혼을 발휘하였다.
평양 시내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를 모아 가축을 길렀다.
한 푼 두 푼 적은 돈이 모이면 곧바로 인근에 땅을 구입했다.
오직 가난한 살림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박한 욕심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악바리, 구두쇠라는 빈정거림에도 개의치 않았다.
오직 자신이 꿈꾸는 길을 향해 줄달음치기에 급급하였다.
하지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고리대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일은
‘사람의 탈을 쓴 죄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황무지 땅이 황금알을 낳다

물론 부를 모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거간꾼의 농간에 빠져 쓸모없는 땅을 사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이에 보답하듯 마침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처럼
사기를 당하여 구입한 황무지가 황금알을 낳는 ‘요술방망이’로 둔갑하였다.

대동강변에 소재한 만달산은 그녀를 일약 평양을 대표하는 거부반열에 올려주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만달산은 시멘트 수요의 증가와 더불어
땅값을 폭발적으로 상승시켰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선행의 한평생 신조인 ‘먹기 싫은 것 먹고, 입기 싫은 옷 입고, 하기 싫은 일 하고’가
드디어 결실을 거두었다.
고난으로 점철된 삶에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밝혀지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 나눔으로 아름다운 인생항로를 개척하다

1908년 환갑을 맞이하면서 백선행은 인생항로를 수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피땀으로 모은 재산을 사회에 나누는 선행을 시작하였다.
먼저 대동군에 커다란 돌다리인 ‘백선행교’를 만들었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가녀린 여성에 의해 이뤄지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3·1만세운동을 목격한 이후에는
인재육성을 위한 육영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광성학교, 숭현여학교, 창덕학교, 숭인상업학교 등에 토지를 기부하여
재정적인 충실과 교육 내실화를 도모하였다.
이 외에도 평양에 소재한 기독교계 사립학교 대부분이 그녀의 기부금으로 운영될 정도였다.
한편 고당 조만식이 한국인을 위한 공회당과 도서관을 겸하는 건축물을 세우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공사비와 운영비 전부를 선뜻 제공했다.
그렇게 평양을 대표하는 공회당인 ‘백선행기념관’이 탄생하였다.


- 최초로 여성사회장의 주인공이 되다

전설적인 인물인 백선행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1933년 5월, 그녀는 평생 모은 재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나눔을 실천한 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장례식은 여성으로는 최초로 사회장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에는 각계 지도층과 기부받은 학교 관계자 등 1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참석하였다.
3분의 2에 달하는 평양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녀를 배웅했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를 제외한 한국 근·현대사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김일성도 그녀의 아낌없는 나눔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최근에는 북한 조선영화사가 뉴질랜드 국제 NGO 단체의 지원을 받아
일대기를 영화 제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기부천사 백선행’이 영화에 진솔하고 사실적으로 반영되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이념을 초월하여 대한민국에서도 상영되기를 바란다.

                                                                     - 월간 독립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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