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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숙명여학교를 근대여성교육 요람지로 만들다
관리자  2014-07-13 22:14:29, 조회 : 1,444, 추천 : 176

1. 귀족(화족)학교 명신여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다



  을사늑약이후 대한제국의 존망은 백척간두에 처하였다.

이때를 전후로 조직된 각종 정치단체나 계몽단체는

최우선 과제로 국권회복을 내세우는 동시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는 근대교육 보급과 민지계발에 집중되었다.

일제에 집중적인 저항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은 물론 민족적인 실력양성은

국권수호를 도모하는 새로운 방략 중 하나였다.

‘근대교육시행은 백년대계’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각지에는 우후죽순처럼 사립학교나 야학 등이 설립 운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여성교육도 부국강병을 위한 시무책이자 긴급한 현안으로 인식됐다.


  전통교육을 받은 여성들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적일 수 없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각과 더불어 사회적인 책무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커다란 반향을 초래하는 가운데 여성교육 확대로 이어졌다.

엄귀비는 1906년에 교육구국 일념으로 양정학당, 명신(明新)여학교

(현 숙명여자중·고등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전신)와 진명(進明)여학교를 각각 설립하였다.

양정은 한국식, 진명은 서양식 모델로 운영하려는 계획이었다.

이 명신여학교 초대교장으로 29년 동안 재직하며 숙명여학교 발전을 견인한 주인공이

바로 이정숙이다.




2. 인습과 굴레를 탈피하다



  명신여학교는 지배층부인이나 여자를 교육하기 위한 귀족학교로 출발하였다.

이미 일본은 학습원(學習院), 청나라는 화족(華族)학교와 같은

지배층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엄귀비는 이와 유사한 교육기관설립을 추진하면서 책임자로 이정숙을 임명하였다.

전통적인 아낙네였던 이정숙은 역부족이라며 여러 번 사양했으나

결국 자신에게 부과된 시대적인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근대교육에 문외한이던 그녀는 일본인 후지자와 노에(淵澤能惠)를 만나

자문을 구하는 동시에 함께 여학교 설립, 운영을 제의하였다.

개교에 앞서 그녀는 한일부인회 회장으로서 매주 1회씩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지배층부인들의 사회적인 역할을 강조하였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하란사(河蘭史), 진명여학교 창설 주역인 여메례황을 비롯하여

남성들도 주요 연사로 참여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강고한 인습이 온존했던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에 일부 부인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온화하고 인자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는 자신이 계획한 바를 주저함 없이 관철했다.

미덕을 겸비한 지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3. 근대여성교육 요람지로 자리매김하다


1906년 5월 22일, 박동 용동궁에서 성대한 개교식이 거행되었다.

교사 중 노에는 수신, 일문독서, 산술 등, 무라이(村井)는 가사과목,

이데(井出)는 음악, 체조 등 예체능, 김소사는 국한문, 습자, 작문 등을 각각 담당하였다.

한글에 익숙하지 못한 일본인 교사를 위하여 통역교사도 수반되었다.

그러나 개교 당시 고조된 분위기와 달리 학생의 호응이나 향학열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교장이 직접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학생을 모집할 정도였다.

이에 수업료나 교재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주시경 등 전문적인 학자들을 교사진으로 충원하여 실천력을 발휘했다.


  엄귀비는 자주 교사와 학생들을 왕실로 초청하는 한편

수업을 시찰한 후 학용품이나 장학금을 하사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안정적인 운영비 확충과 지대한 관심은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교육기간으로 발전하는

든든한 밑거름이었다.

개교당시 제작된 태극기는 숙명여학교를 상징하는 문화재이다.

핍박으로 점철된 일제강점기에도 온전하게 보관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1909년 5월에는 숙명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입학문호를 개방하여 다양한 계층의 자녀를 수용했다.

강제병합 이후에는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안정적인 운영비 확보와 더불어

참다운 숙명인을 양성하는 중등교육 요람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숙명은 정숙(貞淑)한 덕(德)과 현명(賢明)한 지(智)’를 의미한다.

이는 전통적인 현모양처 차원을 넘어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냉철한 지혜를 겸비한

한국적인 여인상을 구현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았다.

3.1독립운동 동참과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발한 1927년 숙명여고보 학생운동은

숙명인을 운명공동체로 결집했던 배경이었다.



4. 불행을 교육활동으로 치유하다


1857년 출생한 이정숙은 16세에 조영하에게 출가하였으나

갑신정변으로 부군이 살해되어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두운 과거에만 구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를 새로운 돌파구로 반전시켜 시대적인 소명에 온몸을 불사르는

선각적인 여성으로 거듭났다.

지배층 가문에서 태어나 성장한 만큼 신여성과 다른 현실인식의 한계성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여성교육 보급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은

신선한 메시지를 전하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삶 속에서 진정한 교육자란 무엇인지 반추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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