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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여전사 김성무
관리자  2015-09-09 09:59:37, 조회 : 1,399, 추천 : 134

[김성무는 1891년 3월 24일 평북 용천에서 목사인 아버지 김국주의 장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과 개화사상을 전해 들으며 성장하였다.
그리고 김성무가 열네 살 되던 어느 일요일, 그녀는 교회마당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보았다.
교인들과 동네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빠 김성겸이 열변을 토하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내용인즉 우리나라가 국권을 빼앗기고 ‘을사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었다.
조국의 현실을 목도한 어린 김성무에게 이날 경험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 교육 현장에서 뜻을 펼치다

부친의 권유로 입학한 선천 보성여학교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설립한 학교였다.
1911년 제 1회로 보성여학교를 졸업한 김성무는 명신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105인 사건’과 관련된 안준 장로의 아들인 안병균과 결혼했다.
남편은 1909년 선천 신성중학교를 제 1회로 졸업하고 숭실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다.
그 또한 아버지 영향으로 일찍부터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12년 김성무는 모교인 보성여학교 교사로 일했다.
1915년에는 남편이 재령 명신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명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재령 만세시위로 일제 폭력성을 세계에 알리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만세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김성무 부부도 재령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재령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사람은 서울 정신여학교 교사였던 장선희였다.
그녀는 김태연 목사에게 독립선언문을 전해 받은 후 몸속에 숨긴 채 고향에 내려와
재령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오빠 장인석, 재령 동부교회 김용승 목사, 교인 김말봉, 김성무 부부도 함께 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감격하면서 만세시위 일시를 장날로 정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문을 등사하였고, 여성들은 명신여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만세시위는 3월 9일 일요일, 재령읍 장날에 거행되었다.
예배를 마친 동지들 그리고 학생들과 만세 함성을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성무는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만삭의 몸으로 발가벗겨지는 수치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당시 일제가 저지른 비인간적인 고문과 악행의 실상은 미국 상원의원 청문회 기록
(1999년 10월)에 ‘만삭 여인 능욕사건’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 여성계몽과 교육사업에 헌신하다

일제 압력으로 교장직에서 물러난 김성무 부부는 선천으로 돌아왔다.
선천에서 안병균은 신성중학교 교감으로, 김성무는 보성여학교 교사로 채용되었다.
선천으로 돌아온 김성무는 동료교사 강기일과 함께
3·1절 1주년을 맞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성무는 피체, 투옥되어 한살배기 아기와 함께 신의주형무소에서
6개월 남짓 옥고를 치렀다.

당시 감옥은 밥을 먹기 전 점호를 실시했는데 자신의 번호를 일본말로 소리쳐야 했다.
그런데 칠순 노인이 일본말을 몰라 자기 번호를 말하지 못해
모욕을 당하는 현장을 보았다.
그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국권을 잃은 백성이다.
배우지도 않은 말을 못한다 하여 발로 차이고 저녁과 아침을 굶기며,
개돼지 취급을 받아야 하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냐?
이제부터 여자교육에 전념하여 나라를 지키는 여성을 기르자“고 굳게 다짐하였다.

이후 1920년 가을, 김성무는 강기일 등과 함께 선천 여자기독청년회(YWCA)를 창설하여
여성계몽과 교육사업을 위해 명신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25년 평양 숭의여학교 유치원 사범과를 졸업한 후
체계적인 유치원 교육을 실시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했다.
1933년 보성여학교 이사, 1937년에는 고아원 영덕학원 원장이 되어
사회사업가로 활동하였다.


- 해방 후 ‘거리의 전도사’로 활동하다

월남 후 김성무는 영락교회 설립 교인이 되었다.
1962년에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직을 맡아 절제운동을 시작했다.
1965년에는 황애덕, 황신덕 등과 함께 3·1정신을 후손에게 전해줄 것을 목적으로
‘3·1여성동지회’를 결성하였다.

1967년 10월, 결혼식 참석차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향년 77세에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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